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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목조 건축/사찰건축

2006,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그리고 대장경판(팔만대장경)

by Hyun-min & Tree ring 2020. 3. 17.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 藏經板殿)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국보 제52호 / 세계유산

 

가야산 중턱에 위치한 해인사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인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Tripitaka Koreana,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웠음)을 약 750여년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있는 삼보사찰 중 법보 사찰이다. 팔만대장경은 어려서부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국보 1호 숭례문보다 더 자주 듣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가장 많이 듣고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유산임이 틀림없다.

 

대장경은 불교의 경전으로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구성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교법
 두번째 구성은 불교 교단의 계율
 세번째 구성은 제자들의 해석서
고려대장경은 고려시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총 16년에 걸쳐서 몽골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내고자 만든 것으로 총 81,137매(枚)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6년 조사당시 촬영한 고려대장경의 모습

 

1995년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축물인 해인사 장경판전석굴암ㆍ불국사, 종묘와 함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세계유산(世界遺産 / UNESCO World Heritage)이란 세계에서 인정하는 후손들에게 물러주어야 할 자산이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등재기준 IV, VI에 해당되어 선정되었다. 등재기준 IV는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며, VI은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된 것을 말한다. 아울러 세계유산 중 모든 문화유산은 진정성(authenticity; 재질, 기법 등에서 원래 가치 보유) 필요하다고 등재기준에 명시하고 있다. 결국은 장경판전은 진정성을 갖는 인류 역사를 예증하는 건축의 총체이며 탁월한 불교예술품인 것이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기준 세부내용

기준 (ⅳ) : 해인사 장경판전은 15세기에 건립되었으며 대장경 목판 보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건축물이다. 효과적인 건물 배치와 창호 계획을 고려하는 동시에 경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대장경판을 오랜 기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데 필요한 자연통풍과 적절한 온도 및 습도 조절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었다. 건물 안에 있는 판가 역시 실내온도와 습도가 균일하게 유지되도록 배열되어 있으며, 이러한 과학적 방법은 600년이 넘도록 변형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의 보존 상태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다.

기준 (ⅵ) : 고려 시대의 국가사업으로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그 내용의 완전성과 정확성, 판각 기술의 예술성과 기술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 불교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갖는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과 연관해 이해해야 하며 건축적, 과학적 측면에서 목판의 장기적 보존을 위해 15세기에 고안된 탁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장경판전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15세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주요 건축 이력은 다음과 같다.

  •  1457년(세조 3년), 경상감사에게 명하여 판전 40칸을 다시 짓게 하였다.

임금(성종)이 노(怒)한 음성으로 말하기를, 해인사를 중창(重創)한 것은 부득이한 것이다. 이 절은 바로 세조(世祖) 때 대장경판(大藏經板)을 간직하고 정희 왕후(貞熹王后)께서 학조(學祖)에게 위임하셨는데, 전일에 학조가 와서 아뢰기를, ‘세조께서 대장경판을 이 절에 간직하셨는데 정희 왕후께서 「대장경판은 선왕(先王)께서 판각(板刻)하신 바이고 왜사(倭使)가 구하는 바이므로 잘못 간직하여 파손되도록 할 수 없다.」고 하시며 노승(老僧)에게 명하여 이 절을 감수(監守)하게 하셨는데, 이제 장차 허물어지려고 하니 노승의 힘으로는 수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대장경》은 왜인이 요구하는 것인데 만약 판본(板本)이 없으면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여겨 특별히 수리하도록 명한 것이니, 경판을 위해서이다. 이것이 어찌 그만둘 수 있는 일인가?  <1489년 6월 27일(성종 20년), 명 홍치(弘治) 2년, 성종실록 229권, 

 

 

  •  1488년(성종 19년), 경판당 30칸을 새롭게 건립하고 보안당으로 하였다.
    - 장경판전 기와에서 발견된 명문에 홍치원년(弘治元年)이 남아 있어, 건립연대로 추정됨
    - 성종실록 18년 11월 8일, 학조스님이 해인사 대장경 판당의 보수 감독을 면해 주기를 청함
  •  1622년(광해군 14년), 수다라장전 상량 
  •  1642년(인조 24년), 중영(重營) > 중수로 추정됨 

 

 

 

2006년에 해인사 장경판전을 조사하게 되었다. 당시 학부생 막내 연구보조원이었기에 조사물품을 챙기며 짧은 일정동안 많은 조사와 분석을 하여야 했기에 일생에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그 소중한 순간에 장경판전을 제대로 탐미하지 못했다. 그래도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가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 

 

2006년 잠시 고려대장경을 반출하고 정비 중이던 장경판전 내부 전경
당시 유일하게 찍어놨던 건축관련 사진으로 기둥, 주두, 초공

 

 

"첫 만남은 2006년"

 

2017년 12월 초대 이사장님으로 건축학계 저명하신 교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려왔고, 곧 사무실로 오셔서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옛 조사 사진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2006년 해인사 장경판전 조사당시에 촬영한 사진에 이사장님이 계셨다. 참 인연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경판전 뒷편 임시 건물에서 해체된 목재의 나이테를 촬영작업과 현장에서 수종 분석